갑자기 주위에 윤종신을 '가수로서' 다시 보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JTBC <히든싱어> '윤종신 편' 방송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대중에게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가수라는 인식은 잘 없었던 윤종신. 그런 윤종신은 데뷔 25년차 '가수'이고, 더욱이 한때 수십 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던 '인기 가수'였다. 사실 그가 노래를 쉬었던 적은 거의 없다. 특히 2010년부터는 매해 '사랑의 역사' 시리즈를 비롯해 꾸준히 콘서트를 열었다. 노래로 대중과 함께 하면서 본업인 가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써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애써 온 가수 윤종신의 가창력이 <히든싱어>를 계기로 나마 인정 받게 된 건 참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는 국내 최고 수준의 '싱어송라이터'이고, 그의 정수는 그가 만드는 멜로디와 가사에 있다. 윤종신이 만든 노래의 멜로디는 단지 초반 몇 초의 전주만으로도 쉽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또 내러티브가 살아 숨 쉬는 그의 '생활 밀착형' 가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는 하는데, 삶이 고달플 때마다 들으면 좋을 숨겨진 그의 노래들이 제법 많다.
좋은 노래는 사람의 감정을 정화시키고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윤종신 편'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히든싱어>에 출연했던 적지 않은 모창 능력자들이 원조 가수의 노래가 자신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음을 얘기했던 건 단지 방송용 멘트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내 삶 속 어떤 순간'에 '윤종신의 어떤 노래'를 들으면 공감할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을지, '윤종신 노래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해볼까 한다. 참고로 선곡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다.
7집 후반後半(1999)
돌아오던 날
7집은 윤종신이 제대 후 처음으로 낸 앨범이다. 앨범 전반에서 '나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들다'라는 마음이 묻어나온다. 그 중에서도 4번 트랙 '돌아오던 날'이 그런 심정이 가장 잘 느껴지는 노래가 아닐까 한다. '돌아오던 날'은 제대한 날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오래도록 못 봤던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내 얼굴이 점점 슬픈 제 모습을 찾는다. 가장 보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발길을 돌려 가 있는 곳은 그 사람의 낯익은 집 앞. 군대에서 애인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슬픈 감정을 극단으로 치닫게 함으로써 오히려 위로해주는 묘한 힘이 있는 노래다. 개인적으로 군 면제여서 남들 군대 있을 때 연애하며 잘 놀았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정말 좋아 공감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경험 해 봤으면 좋겠다는, 군대 있을 때 애인에게 차인 예비역 남성들의 구타를 유발할 만한 마음도 품어보았다.
* 그 외 추천 곡: 우둔남녀(feat. 박정현), 선물, 이별을 앞두고
10집 Behind the smile(2005)
No Schedule
10집의 세 번째에 있는 곡이다. 2013년 월간 윤종신에서 리페어해 김연우가 부르기도 했다. 제목만 보면 '백수 이야기' 정도를 연상하면서 좀 서글프게 웃긴 노래라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무참히 깨뜨릴 만큼 잔잔하고 슬픈 노래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7집에서 '이 사람 아프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10집에서는 '이 사람 외롭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잘은 몰라도 10집을 냈을 무렵의 윤종신은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윤종신이 한때 가수 이현우와 늦은 밤 수시로 만나 포장마차에서 아무 말 없이 몇 시간씩 소주만 기울이다 헤어지는 날이 잦았다는데, 그게 딱 이 무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아무튼 이 노래는 이별 뒤 그동안 꿈꾸던 모든 게 사라진 것만 같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혼자 있기 싫어서 새벽까지 애꿎은 친구만 옆에 자꾸 붙잡아 두는 그런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연 후 마음이 최고조로 아픈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난, 아픔의 여운으로 외로운 시기에 들으면 정말 공감 가면서 위안이 되는 노래다.
* 그 외 추천 곡: 몬스터, 너의 여행, 나의 안부
行步 2010 윤종신
Walking man
2010년의 월간 윤종신을 모아 낸 '행보 2010' 14번 트랙. 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윤종신, 그의 노래에서 다양성을 담보해주는 역할을 하는 곡 중 하나이다. 꾸역꾸역 인생이란 놈을 살아 가고는 있지만 난 누구고 지금 여긴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누군가가 답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걸 묻는 순간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라는 걸 타인에게 인증하는 것만 같다. 대체로 정해진 삶의 루트를 따라 살아 가기만 하면 되었던 전근대인들에 비해 현대인들은 자기 삶을 결정할 더 많은 자유를 갖고 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괴롭다. 내가 지금 옳은 방향으로 잘 살아 가고 있는 건지, 또 내가 선택한 게 맞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만 하니까. 특히 내가 지금 가는 길 위에서 너무 지치고 힘들 때는 더더욱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뭐 물론 별 생각 없이 그때그때 자기 욕구나 충족시키면서 잘 살아가는 이들도 많지만 윤종신의 노래 말이 담고 있는 것과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보면 좋을 곡.
* 그 외 추천 곡: 새로 고침, 그대 없이는 못 살아, 후회王(feat. 김연우)
行步 2011 윤종신
나이
개인적으로 정규 앨범을 제외하고 월간 윤종신을 모아서 내는 앨범 중에 최고로 꼽는 게 '행보 2011'이다. '너 없이 산다(feat. 이현우)', '말꼬리(feat. 정준일)', '못나고 못난', '늦가을(feat. 규현)' 등 잠시도 귀를 쉴 수 없게 만드는 노래로 가득하다. 마지막 열세 번째에 실려 있는 타이틀곡 '나이'는 그 중에서도 탁월하다. 나이 듦에 따른 현실에의 순응이나 체념("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그리고 소위 나이 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두 자리의 숫자 나를 설명하고, 두 자리의 숫자 잔소리 하네. 너 뭐하냐고 왜 그러냐고 지금이 그럴 때냐고.")과 늘어나는 책임에 비례해 줄어드는 자유("하지 말아야 할 게 늘었어. 어린 변화는 못 마땅해. 고개 돌려 한 숨 쉬어도.") 등에 대한 비애를 읽을 수 있는 노래이다. 이 모든 것들에 공감할 법한 30대 중후반 이후의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어보길 권한다.
* 그 외 추천 곡: 너 없이 산다(feat. 이현우), 말꼬리(feat. 정준일), 못나고 못난
인간이 겪는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진실과 행복을 만나기 위한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개인적 고통. 다른 하나는 독재자의 권위주의적 횡포나 빈곤처럼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고통. 사회적 고통은 좋은 정치로 줄여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전자의 고통은 개인이 오롯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정치가 사회적 고통을 거의 해결해주지 못하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생존하려면 개인적 고통을 특별히 더 잘 다스리고 현명하게 넘겨야한다. '이별의 아픔과 그 후에 오는 외로움'이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나이 듦에 뒤따르는 비애'와 같은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을 만날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길, 그 길을 가는 데에 윤종신의 노래는 훌륭한 동행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