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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 20191120

★★



p15.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떄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중략)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p17.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떄,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 심장이 무너질 떄,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

p21. '나'에게서 '모든 존재를 포함한 더 큰 공동체'로 사고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 '나'의 자리에 '세상'을 앉히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기준이 아직 '나'에게 머물러 있다면 자기 생존과 이익에만 집착하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이 자기 중심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다.

p26.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자주 소리를 지른다. 낯선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더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더 상처를 주는 것이다. 다음번에 화가 날 때 이 우화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목소리의 크기는 가슴과 가슴 사이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것을. 그리고 소리의 크기만큼 더 멀어지는 관계가 된다는 것을. 소리 지를 때 더 고통받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불붙은 석탄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부터 화상을 입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깨닫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나를 주위 세상으로부터 더 고립시키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진 관계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고독자가 아닐까.

p27. 상대방이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그것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고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뜻이다. 다정한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 중에 '첩첩남남'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이나 남녀가 마음이 맞아 정답게 속사이는 모습'을 의미한다. 가슴이 더 멀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소리치지 않기,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이다.

p46.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떄문이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p59. 투르니에는 단언한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며, 그와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우정은 예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기 떄문이다. 투르니에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 세계는 본래부터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무채색이다. 그 현실에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고 예찬이다.

p60. 어느 자연주의자는 말한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감동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건강을 점검하라. 자연의 깨어남에 대해 당신 안에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떨치고 일어날 수 없다면, 첫 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p62.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지상의 양식>에서 앙드레 지드는 말한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p67.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자세히 볼수록 더 모르게 된다. 그것이 존재의 신비이다. 한 존재를 아는 것은 한 세계를 끌어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름과 성별과 직업으로 분류하고 규정짓는 순간, 나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중략)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로 오면 좋겠다. 나도 그 많은 이름을 버리고 당신에게로 가면 좋겠다. 이름을 알기 전에 서로를 느끼면 좋겠다.

p163.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우리는 '나처럼 해 봐.'라고 말하는 사람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와 함께 해 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중략) 세상에는 마음의 세계에 대해, 삶과 진리에 대해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병에 정통한 의사처럼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공식처럼 들려 주는 설명은 때로는 독과 같다. 이해라 아니라 관념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따르라고 현자들은 권한다.

p168. 시인 루미는 말했다. "세상은 산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당신에게로 메아리쳐 돌아올 것이다. '나는 멋지게 노래했는데 산이 괴상한 목소리로 메아리쳤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p181. 우리가 겪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 예기치 않았던 불행은 껍질을 태워 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 한다.

p183. 시인 루미는 썼다.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 붕대 감긴 곳을 보라.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네게 들어온다.'

p204.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부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중략)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p205. 내려놓을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더 높이 날고, 높이 날수록 더 많이 본다. 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새는 날갯깃이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p236. 고통은 우리를 동굴 안에 가두며, 영원히외부의 빛을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삶이 이대로 끝나 버릴 것 같다. 그러나 그 기간을 통과하면 어느 날 봄 햇살이 느껴지고, 터질 듯한 꽃망울들이 보이고, 바람을 이겨 내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가온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싶은 돌틈의 풀꽃에서 힘을 얻는다. 그 눈뜸, 세상과의 새로운 만남 하나만으로도 어둠의 시기는 가치가 있다.

p244. <불완전함의 영성>의 저자 어니스트 커츠는 썼다. "우리는 부서짐이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이끈다. '부서진 마음을 가진 사람만큼 온전한 이는 없다.'고 사소브의 랍비 모세 라이브는 말했다. '온전함'이라는 말이 '부서지지' 않은 마음,즉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p247.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자세이다. 각자의 내면에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연장이 망치일 때는 모든 대상을 튀어나온 못으로 보게 된다. (중략)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을 때 찾아온다.

p265.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 메리 올리버는 묻는다. "당신은 단지 조금 숨을 쉬면서 그것을 삶이라 부르는가?"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숨 막히게 몰입한 순간, 삶과 숨 막히게 접촉한 순간이. 그것이 꼭 거창한 순간일 필요는 없다.

p266. 죽어서 여행 가방이 텅 비지 않도록 '가슴 뛰는 순간'을 많이 살아야 한다. 스스로 감동하는 순간들, 삶을 자신의 가슴에 일치시키는 순간들을. 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당신의 가슴에 담긴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