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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 201910

★☆




p25. 경험자들의 조언에 매달려 살아가려는 나를 직접 불확실성과 껴안게 하려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설 때 안내자가 아니라 눈앞의 실체와 만나게 하려고. 결국 삶은 답을 알려줄 것이므로.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p27.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p28. 강박적인 생각을 내려놓을 때 마음과 가슴이 열린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문제들에 너무 쉽게 큰 힘을 부여하고, 그것과 싸우느라 삶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가질 여유가 없다.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인데도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든다. 영적인 삶의 정의는 '가슴을 여는 것' 혹은 '받아들임'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p42. 작자 미상의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p92. '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p99. 사랑, 이해, 공감의 공통점은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가슴, 그래서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주는 마음이다.

p101.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게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행운을 가졌는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p108.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은 이 무력감이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존재가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p144. 생각은 언어만큼이나 쉽게 전염된다.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나의 고유한 생각'들은 수많은 '타인의 생각'들과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생각들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이것은 나야'라거나 '이것은 내가 아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 참일까? 혹시 외부와 상호작용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인데도 내가 마음이라는 공간 안에 가상의 고정된 나를 만들어 놓고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이 자기 착각은 가장 알아차리기 어렵다.

p168. 그 유리잔처럼 나의 육체도, 내 연인의 육체도 이미 부서진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때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해진다. 소중함과 가치가 두려움과 슬픔보다 앞선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덧없고 영원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의마만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가 통제하려고 하지 않을 때 마음은 평화롭다.

p175.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p180. "당신의 삶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사람, 한 계절에만 등장하는 사람, 혹은 평생 동안 만남을 갖는 사람이 있다. 그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면, 저마다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p190. 세상과의 불화가 나날이 늘어날 때 혹시 기쁨의 근원이 내 안에서 줄어든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 톱니바퀴가 닳아 제대로 정오를 가리키지 못하는 시계처럼 삶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멈춘 것은 아닌가도.

p209.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얼마만큼 아는 것을 의마할까? '안다'처럼 정반대의 말과 같은 의미인 단어가 또 있을까?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 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