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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20190629


책이란 무엇인가


p5.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p22. 그러나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이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p37.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연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중략)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p86. 그렇다면 잘 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쉬기 위해서는 일단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엇엔가 열시밓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잘 쉴 수도 없다. 열심히 종사하지 않은 사람의 휴식에는 불안의 기운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쉰다는 것이 긴장의 이완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오직 제대로 긴장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이완을 누릴 수 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 될 수 있다.

p175.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 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 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중략)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p189.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과 악의 비판자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 악을 요청한다. 상대가 나쁘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비판하는 자신은 너무나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p192. 시시포스의 형벌을 이루는 3요소인 노고, 덧없음, 끝없음 중 하나만이라도 제거할 수 있으면 그 인생은 더 이상 시시포스의 고된 삶이 아닐 것이다.

p201. 이 모든 것들은 소반이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전시기획자들의 안목을 통해 창조된 아름다움이다. 어떤 대상도 그것이 적절히 전시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입을 수 없고 어떻게 전시되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관람자가 체험한 것은 소반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소반 전시의 아름다움이다.

p245. 가지 않은 길은 가지 않았기에 잊히지 않는 법.

280. 이처럼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대상을 장악하게끔 해준다. (중략) 지식이 지식의 소유자에게 가져다주는 보다 깊은 신비는 바로 지식이 그와 대상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중략) 어떤 대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냉정한' 지식을 획득했을 경우, 그 지식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이 우리를 홀리는 힘을 벗어나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역으로 말하여, 우리가 어떤 대상의 마력에 홀릴 때는 그 대상에 대하여 무지한 경우가 많다.

p285. 그렇다, 많이 아는 자는 자유로운 것이다. 정말로 진리, 아니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냉정한 지식이 새로이 설정해준 대상과의 관계에 힘입어 우리는 더 이상 대상에 대한 정서적 노예가 되지 않는다.

p286. 인간이 구원되었다, 행복하다, 라고 말할 때는, 많은 경우,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거리를 유지할 때라기보다는, 기꺼이 스스로 목매고 싶은, 스스로 그것 때문에 부자유스러워지고 싶은 어떤 대상을 찾은 경우다. 고전적으로 말하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인 셈이다.

p318.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만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